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미 해군 분석 센터에는 심각한 과제가 하나 떨어졌습니다. 독일군의 대공포화를 뚫고 귀환한 폭격기들의 생존율을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군 지휘부는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비행기들을 면밀히 조사했습니다. 데이터는 명확했습니다. 돌아온 비행기들은 하나같이 날개와 동체에 벌집처럼 총알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반면, 엔진과 조종석 부위는 상대적으로 깨끗했습니다.
지휘관들의 결론은 직관적이었습니다. “가장 많이 피격된 날개와 동체의 장갑을 보강하라.”
하지만 통계학자 아브라함 발드(Abraham Wald)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지휘부의 결정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오. 총알 자국이 하나도 없는 엔진과 조종석을 보강해야 합니다.”
지휘관들은 황당해했습니다. 총알을 맞지도 않은 곳을 왜 보강한단 말인가? 발드의 논리는 섬뜩하리만큼 명쾌했습니다.
“날개에 총을 맞은 비행기는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엔진에 총을 맞은 비행기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데이터에는 격추된 비행기가 빠져 있습니다.”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총알 자국(데이터)에만 집중하느라,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침묵하고 있는 비행기(누락된 데이터)를 상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존자 편향(Survivorship Bias)’입니다. 어떤 선택의 과정(Selection Process)을 통과한 생존자들의 데이터만 분석 대상에 포함되고, 통과하지 못한 탈락자들의 데이터는 누락됨으로써 발생하는 통계적 오류입니다.
우리는 흔히 “성공하려면 성공한 사람을 배우라”고 말합니다. 대학을 중퇴하고 창업해 거부가 된 빌 게이츠나 마크 저커버그를 보며 “학교 졸업장은 중요하지 않다”고 결론 내립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대학을 중퇴하고 실패하여 빚더미에 앉은 수만 명의 청년들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실패했기에 미디어에 등장하지 않았고, 우리의 데이터 표본에서 삭제되었습니다.
왜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지 못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뻔한 함정에 매번 빠지는 걸까요? 단순히 우리가 어리석어서일까요? 학술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인간의 지능 문제가 아니라 진화적 설계와 뇌의 에너지 효율 문제입니다.
진화심리학적 관점: 패턴 인식의 생존 본능
원시 인류에게 생존은 빠른 판단에 달려 있었습니다. 숲 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 그 소리의 원인을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인간은 잡아먹혔습니다. 대신 눈앞에 보이는 현상(소리)을 즉각적인 위협으로 연결하는 직관적 패턴 인식이 발달한 개체만이 살아남았습니다. 즉,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믿는 편향은, 수만 년 동안 우리를 생존하게 해 준 가장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데이터를 상상하는 것은 생존에 당장 도움이 되지 않는 불필요한 기능이었습니다.
뇌과학적 관점: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의 사고 체계를 ‘시스템 1(직관)’과 ‘시스템 2(이성)’로 구분했습니다.
- 시스템 1: 빠르고, 자동적이며, 에너지가 거의 들지 않습니다. (눈앞의 총알 자국을 보고 “여기가 위험해”라고 판단)
- 시스템 2: 느리고, 논리적이며,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격추된 비행기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고 통계를 재구성)
인간의 뇌는 체중의 2%에 불과하지만 에너지는 20%를 씁니다. 그래서 뇌는 본능적으로 칼로리 소모를 줄이려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인지적 구두쇠’인 이유입니다. 보이지 않는 데이터(엔진 맞은 비행기)를 상상하려면 시스템 2를 가동해 막대한 에너지를 써야 합니다. 뇌는 이 과정을 거부하고, 편하고 에너지가 적게 드는 시스템 1(보이는 대로 판단하기)을 선택하도록 우리를 유도합니다.
결국 생존자 편향은 뇌가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선택한 진화적 타협입니다.
본능을 거스르는 자가 승리한다
문제는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 특히 비즈니스 환경은 원시 시대의 정글과는 다르다는 점입니다. 직관적인 패턴 인식이 비즈니스에서는 치명적인 독이 됩니다.
서점에 널려 있는 ‘성공한 기업들의 7가지 습관’ 같은 책들이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책들은 살아남은 기업들의 공통점을 나열하지만, 똑같은 전략을 쓰고도 망한 기업들이 왜 망했는지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비즈니스에서 생존자 편향을 극복하려면, 우리의 뇌가 싫어하는 일을 의식적으로 해야 합니다.
- 성공 사례(Best Practice) 벤치마킹을 의심하십시오. 그 전략이 승리의 원인인지, 아니면 단지 살아남은 자가 가지고 있던 우연한 특징인지 구분해야 합니다.
- 실패를 부검(Post-mortem)하십시오. 시장에서 퇴출된 기업, 실패한 프로젝트, 거절당한 제안서 속에 진짜 데이터가 숨어 있습니다. 리스크 관리의 핵심은 ‘어떻게 성공할까’가 아니라 ‘남들은 왜 죽었을까’를 아는 데 있습니다.
마치며
아브라함 발드가 엔진을 보강하자고 주장했을 때, 그는 단순히 통계를 분석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인간의 본능적인 직관과 싸운 것입니다.
세상을 이해하려 할 때,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지금 내 책상 위에 올라오지 못한 보고서는 무엇인가?” “침묵하고 있는 데이터는 어디에 있는가?”
진실은 언제나 소란스러운 성공담 뒤편, 조용한 무덤가에 숨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힘, 그것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우리가 갖춰야 할 진짜 지성입니다.


댓글 남기기